(05/06) 주일예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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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멀티팀 작성일18-05-12 23:31 조회3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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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움교회 #주일예배 #1부 #김희규
“증명”
(눅 23:26~46)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증명해 보일 때 즐겁다. 내가 얼마나 남다른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인정받고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세상이 우리를 조종하는 방식은 내가 얼마나 쓸모있는 사람인지 증명하라 요구하고, 우리는 그런 욕구에 잡혀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도 세상의 도전에 직면한다. 그 배후에 사탄의 모습이 보인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메시아냐, 구원자냐? 십자가에서 내려와 증명하라! 예수님의 소명 시작과 끝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도전과 부딪친다.(마 4:3,9),(눅 23:35,37,39)
예수님은 지금 뭔가를 입증할 형편이 못 된다. 다 빼앗기고 죽어가고 있는데 뭘 증명하겠나. 그런데도 사탄은 집요하게 증명을 요구한다. 사탄이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은 증명 자체가 아니라 증명하는 방식이다. 사탄은 자신의 방식으로 예수님이 그 위대한 성취, 성공, 남다름, 능력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예수님의 방식과 대상은 특이하다. 먼저, 예수님은 사탄이 요구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누구보다 비참하고 초라하고 목숨조차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하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사탄은 예수님에게 너 자신을 증명하라 요구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에게 증명을 요구하는 ‘그들’을 증명의 대상으로 여기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들이 누구인지 증명하려 하신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 그들은 은혜가 필요한 죄인,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라 말씀하고 있다.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 누구보다 긍휼이 필요한 것은 너희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은 “너나 잘해라, 그렇게 예수를 따라도 쫄딱 망했네” 하고 조롱한다. 그 비유들이 맞는 말이라서 아프다! 예수님은 자신의 비참함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아픔과 통증이 없다고 하지 않았다. 나 아프다 죽어간다 비참하고 초라하다고 인정하신다. 너희 말이 맞다, 악에 받칠만큼 고통스러운 지옥의 한가운데 있지 않으냐?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낙원이 필요하다. 나와 같이 낙원에 함께 가자! 비참하고 초라한 자리에 머물면서도 예수님은 당신이 아니라 너희가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강조하신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하나님의 죄 사함의 능력에 대해 전하고 있어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평안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도 진리의 빛을 설명하고 알도록 도와줘야 한다. 천국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천국 가본 적이 없어도 만나는 사람마다 천국을 이야기해야 한다. 더럽혀지고 깨어지고 죄에 고통스러워하고 혼란스러워하지만,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구원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양하는 우리의 비겁과 위선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증명”
(눅 23:26~46)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증명해 보일 때 즐겁다. 내가 얼마나 남다른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인정받고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세상이 우리를 조종하는 방식은 내가 얼마나 쓸모있는 사람인지 증명하라 요구하고, 우리는 그런 욕구에 잡혀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도 세상의 도전에 직면한다. 그 배후에 사탄의 모습이 보인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메시아냐, 구원자냐? 십자가에서 내려와 증명하라! 예수님의 소명 시작과 끝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도전과 부딪친다.(마 4:3,9),(눅 23:35,37,39)
예수님은 지금 뭔가를 입증할 형편이 못 된다. 다 빼앗기고 죽어가고 있는데 뭘 증명하겠나. 그런데도 사탄은 집요하게 증명을 요구한다. 사탄이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은 증명 자체가 아니라 증명하는 방식이다. 사탄은 자신의 방식으로 예수님이 그 위대한 성취, 성공, 남다름, 능력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예수님의 방식과 대상은 특이하다. 먼저, 예수님은 사탄이 요구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누구보다 비참하고 초라하고 목숨조차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하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사탄은 예수님에게 너 자신을 증명하라 요구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에게 증명을 요구하는 ‘그들’을 증명의 대상으로 여기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들이 누구인지 증명하려 하신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 그들은 은혜가 필요한 죄인,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라 말씀하고 있다.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 누구보다 긍휼이 필요한 것은 너희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은 “너나 잘해라, 그렇게 예수를 따라도 쫄딱 망했네” 하고 조롱한다. 그 비유들이 맞는 말이라서 아프다! 예수님은 자신의 비참함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아픔과 통증이 없다고 하지 않았다. 나 아프다 죽어간다 비참하고 초라하다고 인정하신다. 너희 말이 맞다, 악에 받칠만큼 고통스러운 지옥의 한가운데 있지 않으냐?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낙원이 필요하다. 나와 같이 낙원에 함께 가자! 비참하고 초라한 자리에 머물면서도 예수님은 당신이 아니라 너희가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강조하신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하나님의 죄 사함의 능력에 대해 전하고 있어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평안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도 진리의 빛을 설명하고 알도록 도와줘야 한다. 천국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천국 가본 적이 없어도 만나는 사람마다 천국을 이야기해야 한다. 더럽혀지고 깨어지고 죄에 고통스러워하고 혼란스러워하지만,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구원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양하는 우리의 비겁과 위선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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