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 수요영성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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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멀티팀 작성일18-06-03 00:53 조회2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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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움교회 #수요영성집회 #설교 #요약
“나병”
(눅 5:12~16)_김희규목샴@세움교회 수요영성집회_180530
>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구는 강하다.
위험요소가 생기면, 떠나든지 격리하든지 한다.
격리하는 이유는 전염성 때문이다.
인간의 안전욕구는 너무 강력해서 때론 지나칠 정도로, 천박할 정도로 심하다.
안전을 위한 격리임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격리대상은 소외시키고 상처 입히게 된다.
>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대상이 나병환자다.
_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 : 누가 보더라도 혐오스런 상태다.
의학적으로도 전염성이 강하고 종교적으로도 격리대상이다.
제사장으로부터 부정하다는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 가족과 공동체, 종교로부터도 추방 격리된다.
_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나러 동네로 들어왔다!
동네로 와서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살고 싶어서, 낫고 싶어서,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동네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랬을거다.
> 예수님의 특이한 행태 :
1_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다” ;
말씀만 하면 수천명을 먹이시고 귀신더러 나가라 하면 나가게 하시는 분이 왜?
더욱이 믿음 약한 자들이 ‘부정해진’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이기도 한데.
제사장은 나병환자를 확진할 때, 다 나았을 때 오직 말로 선포하지만, 예수님도 말씀으로 선포하시기만 하면 되는데도 손을 대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식이다!
2_ “그들에게 입증하라” ;
다 나았음을 제사장에게 입증하여야 하지만 ‘그들’은 제사장이 아닌 제3의 사람들이다!
_ 네가 돌아갈 사람들에게 입증하라! 입증하는 것은 네 책임이다!
손을 대시는 따뜻한 행위와 입증하라는 냉정한 말씀은 상반된 성격이다.
너를 소외시킨 사람들에게 입증해야 함은 네 의무다!
_ 육체적 치료와 종교적 치료후 자신의 원래 삶으로 복귀해야 한다.
소외시키고 격리시킨 사람들이 품어줘야 하지만, 겉의 나병은 치료됐어도 거절 무시 모욕감으로 인한 깊은 피해의식의 마음의 나병이 더 심각하다!
그들은 가해자, 나는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을 끊어버리지 않고는 단절된 관계 안에 복귀하기 어렵다.
“누구 때문에” 하는 피해의식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관계회복이 안된다.
_ 관계안으로 복귀하는 마지막 관문, 그들은 가해자 나는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은 자기 스스로 끊어내야 한다.
>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나와 타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오셨다.
복음이 나와 그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복음일 수 없다.
_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야할 것은 나를 모욕하고 무시하고 차단했던 그 사람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존중해주는 것이다.
나의 안전함을 입증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_ 내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주님이 명령하셨다!
_ 예수님까지 부정해질 나의 환부에 예수님이 손을 대신다!
내가 살고 싶어서, 낫고 싶어서 주님 앞에 나올 때 손을 대신다!
주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자!
“나병”
(눅 5:12~16)_김희규목샴@세움교회 수요영성집회_180530
>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구는 강하다.
위험요소가 생기면, 떠나든지 격리하든지 한다.
격리하는 이유는 전염성 때문이다.
인간의 안전욕구는 너무 강력해서 때론 지나칠 정도로, 천박할 정도로 심하다.
안전을 위한 격리임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격리대상은 소외시키고 상처 입히게 된다.
>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대상이 나병환자다.
_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 : 누가 보더라도 혐오스런 상태다.
의학적으로도 전염성이 강하고 종교적으로도 격리대상이다.
제사장으로부터 부정하다는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 가족과 공동체, 종교로부터도 추방 격리된다.
_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나러 동네로 들어왔다!
동네로 와서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살고 싶어서, 낫고 싶어서,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동네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랬을거다.
> 예수님의 특이한 행태 :
1_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다” ;
말씀만 하면 수천명을 먹이시고 귀신더러 나가라 하면 나가게 하시는 분이 왜?
더욱이 믿음 약한 자들이 ‘부정해진’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이기도 한데.
제사장은 나병환자를 확진할 때, 다 나았을 때 오직 말로 선포하지만, 예수님도 말씀으로 선포하시기만 하면 되는데도 손을 대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식이다!
2_ “그들에게 입증하라” ;
다 나았음을 제사장에게 입증하여야 하지만 ‘그들’은 제사장이 아닌 제3의 사람들이다!
_ 네가 돌아갈 사람들에게 입증하라! 입증하는 것은 네 책임이다!
손을 대시는 따뜻한 행위와 입증하라는 냉정한 말씀은 상반된 성격이다.
너를 소외시킨 사람들에게 입증해야 함은 네 의무다!
_ 육체적 치료와 종교적 치료후 자신의 원래 삶으로 복귀해야 한다.
소외시키고 격리시킨 사람들이 품어줘야 하지만, 겉의 나병은 치료됐어도 거절 무시 모욕감으로 인한 깊은 피해의식의 마음의 나병이 더 심각하다!
그들은 가해자, 나는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을 끊어버리지 않고는 단절된 관계 안에 복귀하기 어렵다.
“누구 때문에” 하는 피해의식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관계회복이 안된다.
_ 관계안으로 복귀하는 마지막 관문, 그들은 가해자 나는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은 자기 스스로 끊어내야 한다.
>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나와 타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오셨다.
복음이 나와 그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복음일 수 없다.
_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야할 것은 나를 모욕하고 무시하고 차단했던 그 사람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존중해주는 것이다.
나의 안전함을 입증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_ 내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주님이 명령하셨다!
_ 예수님까지 부정해질 나의 환부에 예수님이 손을 대신다!
내가 살고 싶어서, 낫고 싶어서 주님 앞에 나올 때 손을 대신다!
주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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