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8) 수요영성집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멀티팀 작성일18-04-22 00:55 조회24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세움교회 #수용영성집회 #설교 #리뷰 #김희규
도피성
- 여호수아 20장 1~9절
그 나라의 법률이 그 나라의 수준입니다. 3,500년전 모세의 율법이 민법 상법 민사소송법 의료분쟁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현대 법률학자들에게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 중 희년과 도피성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 50년째가 희년으로, 희년이 되면 사고 팔았던 모든 땅은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 50년마다 모든 재산이 원래대로 제자리를 잡습니다. 땅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종 되었던 사람도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면 죽이라 되어 있지만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일 경우 복수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도피성 제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도피성은 모두 6개로 요단 동편에 3개, 요단 서편에 3개가 있으며, 나라 어디서든 뛰면 하루안에 도달하는 거리에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았던 시대지만 합당한 재판과 정당한 절차를 거쳐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도피성의 장로가 먼저 얘기를 듣고 타당하면 범죄자를 들어오게 하고, 조사처리위원회를 구성해서 정식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우발적 사고였으면 배상할 것은 배상하고 도피성에서 평생을 살도록 했습니다. 다만, 도피성에서 나가면 죽임당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살인하던 때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사면을 받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도피성이 가지는 신학적인 메시지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죄 지은 자가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이면, 다른 하나는, 대제사장이 죽으면(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예표) 고향 가족으로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오늘 죄를 지은 우리가 도피성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죄는 직면해야 합니다. 정식 재판은 사고 현장으로 가서 받습니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나 우발적 사고에 의한 살인임을 최종 확정받는 자리입니다. 살인자에게는 고통의 순간입니다.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경험하게 됩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사면을 받더라도 유가족의 아픈 눈빛과 절규를 평생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도 사울의 기억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유가족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자신은 바울인데 사람들은 사울로 기억합니다. 바울이지만 사울의 흔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수용해야 합니다. 죄책감과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이 죽으면 고향으로 가서 그 아픔이 남아있는 그 땅 그 사람들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죽인 사람이지만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받았음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 죄가 나에게 어떠한 것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분명히 알고 직면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를 치우거나 지우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의가 아니고 우발적 사고라고 합리화하지 않고 죄를 직면할 때 죄를 미워하고 무서워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사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죄를 직면하고 용서의 은혜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도피성
- 여호수아 20장 1~9절
그 나라의 법률이 그 나라의 수준입니다. 3,500년전 모세의 율법이 민법 상법 민사소송법 의료분쟁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현대 법률학자들에게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 중 희년과 도피성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 50년째가 희년으로, 희년이 되면 사고 팔았던 모든 땅은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 50년마다 모든 재산이 원래대로 제자리를 잡습니다. 땅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종 되었던 사람도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면 죽이라 되어 있지만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일 경우 복수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도피성 제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도피성은 모두 6개로 요단 동편에 3개, 요단 서편에 3개가 있으며, 나라 어디서든 뛰면 하루안에 도달하는 거리에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았던 시대지만 합당한 재판과 정당한 절차를 거쳐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도피성의 장로가 먼저 얘기를 듣고 타당하면 범죄자를 들어오게 하고, 조사처리위원회를 구성해서 정식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우발적 사고였으면 배상할 것은 배상하고 도피성에서 평생을 살도록 했습니다. 다만, 도피성에서 나가면 죽임당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살인하던 때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사면을 받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도피성이 가지는 신학적인 메시지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죄 지은 자가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이면, 다른 하나는, 대제사장이 죽으면(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예표) 고향 가족으로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오늘 죄를 지은 우리가 도피성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죄는 직면해야 합니다. 정식 재판은 사고 현장으로 가서 받습니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나 우발적 사고에 의한 살인임을 최종 확정받는 자리입니다. 살인자에게는 고통의 순간입니다.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경험하게 됩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사면을 받더라도 유가족의 아픈 눈빛과 절규를 평생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도 사울의 기억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유가족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자신은 바울인데 사람들은 사울로 기억합니다. 바울이지만 사울의 흔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수용해야 합니다. 죄책감과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이 죽으면 고향으로 가서 그 아픔이 남아있는 그 땅 그 사람들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죽인 사람이지만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받았음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 죄가 나에게 어떠한 것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분명히 알고 직면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를 치우거나 지우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의가 아니고 우발적 사고라고 합리화하지 않고 죄를 직면할 때 죄를 미워하고 무서워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사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죄를 직면하고 용서의 은혜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