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7) 수요영성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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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멀티팀 작성일18-03-08 17:50 조회3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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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어먹는_말씀 #수요영성집회 #세움교회 by sk.kim.
역겨움
- 출애굽기 32장 1~12절
우리 몸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기능과 증상은 명확히 드러나는 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비장입니다. 비위가 상한다 할 때 말하는 부위가 비장과 위입니다. 주로 적혈구 파괴 처리 작용이 이루어지며 림프구를 생성하는 등 면역 기능을 담당합니다. 비장이 안 좋으면 구역질과 메스꺼움이 일어납니다.
우리를 살리는 기능이 역겨움입니다. 내 삶에 유익하지 않은 것이 들어올 땐 역겨움이 생겨야 정상입니다. 보암직 먹음직스러워도 영적으로 역겨움을 느껴야 죄가 죄로, 더러운 것이 더러운 것으로 느껴지고 피할 수 있습니다. 죄가 아름답고 현란하고 합리화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역겨움을 느껴야 합니다.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구할 때 우리는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한동안 시내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기다리지 못했고, 하나님도 모세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누구도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신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지도자 모세까지 없어지니 불확실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그 두려워하는 백성을 아론은 두려워했습니다.
아론은 백성들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즐겁고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것 외에는 자신들 속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신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으로 여기며 섬기는 데는 정서적으로도 역적으로도 아무런 역겨움이나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보아왔던 금송아지라면 하나님의 모습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났던 모세는 하나님 아닌 것에는 본능적으로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출애굽 과정에서 단 한 명도 상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때 삼천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모르고 지은 죄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납하면 다 멸망하겠다는 감당할 수 없는 역겨움이 모세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맛본 사람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줄 압니다.
모세가 가진 신앙이 위대했던 것은, 자신은 백성들을 모두 진멸할지 모르니 천사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 이름을 지우소서"(출 32:32), "함께 가소서"(출 33:15)라며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를 고집합니다.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고 안식의 땅이라지만 하나님이 없으면 그곳은 가나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이며 하나님이 샬롬입니다.
자기 안의 욕망을 비전으로 합리화시키는 게 인간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자기 안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달하여 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혼탁한 시대에 분별하고 삽니까? 하나님을 맛본 사람만이 하나님 아닌 것에 영적 역겨움을 느낍니다. 날마다 주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고 사는 사람은 죄에 역겨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맛보고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 역겨움을 회복하십시오.
역겨움
- 출애굽기 32장 1~12절
우리 몸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기능과 증상은 명확히 드러나는 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비장입니다. 비위가 상한다 할 때 말하는 부위가 비장과 위입니다. 주로 적혈구 파괴 처리 작용이 이루어지며 림프구를 생성하는 등 면역 기능을 담당합니다. 비장이 안 좋으면 구역질과 메스꺼움이 일어납니다.
우리를 살리는 기능이 역겨움입니다. 내 삶에 유익하지 않은 것이 들어올 땐 역겨움이 생겨야 정상입니다. 보암직 먹음직스러워도 영적으로 역겨움을 느껴야 죄가 죄로, 더러운 것이 더러운 것으로 느껴지고 피할 수 있습니다. 죄가 아름답고 현란하고 합리화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역겨움을 느껴야 합니다.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구할 때 우리는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한동안 시내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기다리지 못했고, 하나님도 모세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누구도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신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지도자 모세까지 없어지니 불확실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그 두려워하는 백성을 아론은 두려워했습니다.
아론은 백성들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즐겁고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것 외에는 자신들 속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신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으로 여기며 섬기는 데는 정서적으로도 역적으로도 아무런 역겨움이나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보아왔던 금송아지라면 하나님의 모습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났던 모세는 하나님 아닌 것에는 본능적으로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출애굽 과정에서 단 한 명도 상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때 삼천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모르고 지은 죄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납하면 다 멸망하겠다는 감당할 수 없는 역겨움이 모세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맛본 사람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줄 압니다.
모세가 가진 신앙이 위대했던 것은, 자신은 백성들을 모두 진멸할지 모르니 천사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 이름을 지우소서"(출 32:32), "함께 가소서"(출 33:15)라며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를 고집합니다.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고 안식의 땅이라지만 하나님이 없으면 그곳은 가나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이며 하나님이 샬롬입니다.
자기 안의 욕망을 비전으로 합리화시키는 게 인간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자기 안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달하여 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혼탁한 시대에 분별하고 삽니까? 하나님을 맛본 사람만이 하나님 아닌 것에 영적 역겨움을 느낍니다. 날마다 주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고 사는 사람은 죄에 역겨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맛보고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 역겨움을 회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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