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6) 주일예배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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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멀티팀 작성일17-04-22 00:00 조회5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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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천당 불신지옥은 복음의 핵심이 아니라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사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보다 지옥을 가지 않는 안전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절마다 많은 분이 설교를 통해 부활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부활, 구원의 완성이라는 신학적 의미로서의 부활, 예언의 성취라는 관점에서의 부활을 주로 설교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알고 구원의 완성이며 예언의 성취라는 점을 압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습니다. 아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천국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살아난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 부활입니다.
믿음이 죽어갈 때 느껴지는 가장 큰 고통은 혼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했을 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만큼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불릴 만큼 인정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제사장의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정하고 배신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가졌던 확신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정말 예수님의 제자였는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후 베드로는 낙향하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 번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 부정한 베드로를 정죄하기 위해 세 번 물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시면서 베드로가 가진 혼란을 풀어주셨습니다. 지난 삼 년 동안 예수님의 수제자로 따랐던 베드로의 마음은 거짓이 아니라 사랑이었음을 확인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의 제자로 베드로를 부르고 하나님의 소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죄를 보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연약함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배신한 일 때문에 베드로의 제자였던 시간까지 모두 거짓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제자였던 시간을 기억하시고 베드로의 배신한 일을 연약함으로 보셨습니다.
행위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그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르는 죄로 우리가 죄인이라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바라보시기에 우리가 저지르는 죄를 우리의 연약함으로 이해하십니다.
살다 보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죄를 다시 생각하면 어떻게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며 교회에 다니고 찬양을 했었는지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졌던 마음은 진짜였고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실패로 인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은 단지 우리가 미숙하였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롭게 소망을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상 멀티팀이었습니다.
부활절마다 많은 분이 설교를 통해 부활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부활, 구원의 완성이라는 신학적 의미로서의 부활, 예언의 성취라는 관점에서의 부활을 주로 설교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알고 구원의 완성이며 예언의 성취라는 점을 압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습니다. 아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천국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살아난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 부활입니다.
믿음이 죽어갈 때 느껴지는 가장 큰 고통은 혼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했을 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만큼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불릴 만큼 인정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제사장의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정하고 배신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가졌던 확신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정말 예수님의 제자였는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후 베드로는 낙향하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 번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 부정한 베드로를 정죄하기 위해 세 번 물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시면서 베드로가 가진 혼란을 풀어주셨습니다. 지난 삼 년 동안 예수님의 수제자로 따랐던 베드로의 마음은 거짓이 아니라 사랑이었음을 확인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의 제자로 베드로를 부르고 하나님의 소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죄를 보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연약함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배신한 일 때문에 베드로의 제자였던 시간까지 모두 거짓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제자였던 시간을 기억하시고 베드로의 배신한 일을 연약함으로 보셨습니다.
행위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그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르는 죄로 우리가 죄인이라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바라보시기에 우리가 저지르는 죄를 우리의 연약함으로 이해하십니다.
살다 보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죄를 다시 생각하면 어떻게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며 교회에 다니고 찬양을 했었는지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졌던 마음은 진짜였고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실패로 인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은 단지 우리가 미숙하였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롭게 소망을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상 멀티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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