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 주일예배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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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멀티팀 작성일16-10-27 02:33 조회6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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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어 사울 집안의 소유를 모두 그에게 돌려주고 항상 다윗의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먹도록 명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것은 요나단 때문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요나단과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떠나기 전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잘 가게. 우리가 서로 주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은 잊지 않도록 하세. 주님께서 나와 자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나의 자손과 자네의 자손 사이에서도, 길이길이 그 증인이 되실 걸세."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므비보셋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 뒤 다윗과 다윗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서 살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므비보셋은 자신을 찾은 다윗이 왕의 식탁에서 항상 음식을 먹을 것이라 이야기했을 때 "이 좋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나 다름없는 저를 임금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라고 되묻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죽이려고 했던 다윗과 그의 왕자들이 있는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므비보셋은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 왕가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사울 왕가의 살아남은 혈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배신한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만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평생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불편한 사람을 한 두번 마주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평생 마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윗이 자신에게 창을 던졌던 사울의 손자를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매일, 언제나 왕의 식탁에 므비보셋을 초대했고 함께 예루살렘에서 살았습니다. 므비보셋 역시 다윗을 마주하는 일이 두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다윗과 함께 하는 식탁이 이어지자 비록 두 다리를 여전히 절었지만 므비보셋은 다윗을 신뢰할 수 있게 회복되었습니다. 훗날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서 도망가자 므비보셋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까지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습니다. 므비보셋과 다윗 사이를 모함한 시바로 인해 므비보셋에 대한 신뢰를 잃은 다윗이 "시바와 밭을 나누어 가져라"라고 말해도 므비보셋은 다윗이 안전하게 왕궁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시바가 밭을 다 차지해도 괜찮다고 대답합니다.
비록 다윗은 므비보셋을 향한 신뢰를 끝까지 이어 가지 못했지만 므비보셋은 다윗을 향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해서 베풀었던 다윗의 부족한 사랑에도 므비보셋은 죽은 개나 다름없다 여기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은혜로 주어지는 사랑을 므비보셋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질 만큼 과격한 성격이었던 사도 요한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직접 뵌 유일한 제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 돌아가신 후 평생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봉양하며 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순교하며 전도할 때, 과격한 성격을 가졌던 사도 요한은 자신의 어머니도 아닌 남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사도 요한이 남긴 요한일서, 이서, 삼서를 보면 우뢰의 아들 요한은 없고 사랑의 사도 요한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3년 동안 경험한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동안 어느새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은혜로 주어지는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나 누군가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사랑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 사랑은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상, 멀티팀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 뒤 다윗과 다윗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서 살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므비보셋은 자신을 찾은 다윗이 왕의 식탁에서 항상 음식을 먹을 것이라 이야기했을 때 "이 좋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나 다름없는 저를 임금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라고 되묻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죽이려고 했던 다윗과 그의 왕자들이 있는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므비보셋은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 왕가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사울 왕가의 살아남은 혈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배신한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만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평생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불편한 사람을 한 두번 마주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평생 마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윗이 자신에게 창을 던졌던 사울의 손자를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매일, 언제나 왕의 식탁에 므비보셋을 초대했고 함께 예루살렘에서 살았습니다. 므비보셋 역시 다윗을 마주하는 일이 두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다윗과 함께 하는 식탁이 이어지자 비록 두 다리를 여전히 절었지만 므비보셋은 다윗을 신뢰할 수 있게 회복되었습니다. 훗날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서 도망가자 므비보셋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까지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습니다. 므비보셋과 다윗 사이를 모함한 시바로 인해 므비보셋에 대한 신뢰를 잃은 다윗이 "시바와 밭을 나누어 가져라"라고 말해도 므비보셋은 다윗이 안전하게 왕궁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시바가 밭을 다 차지해도 괜찮다고 대답합니다.
비록 다윗은 므비보셋을 향한 신뢰를 끝까지 이어 가지 못했지만 므비보셋은 다윗을 향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해서 베풀었던 다윗의 부족한 사랑에도 므비보셋은 죽은 개나 다름없다 여기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은혜로 주어지는 사랑을 므비보셋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질 만큼 과격한 성격이었던 사도 요한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직접 뵌 유일한 제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 돌아가신 후 평생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봉양하며 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순교하며 전도할 때, 과격한 성격을 가졌던 사도 요한은 자신의 어머니도 아닌 남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사도 요한이 남긴 요한일서, 이서, 삼서를 보면 우뢰의 아들 요한은 없고 사랑의 사도 요한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3년 동안 경험한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동안 어느새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은혜로 주어지는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나 누군가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사랑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 사랑은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상, 멀티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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